<프롤로그>
'부부싸움은 물 베기'라는 옛 말은 요즘 우리나라 현실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결혼가정의 1/3 이 이혼을 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연애결혼으로 서로 너무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도 세 명이나 있어서 그런지 싸우더라도 하루 이상은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냉기류는 아이들에게 불안함과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내가 먼저 꼭 사과를 하고 어떻게든 나쁜 감정을 풀고 서로를 용서해 보려고 한다. 대화를 해서 오해를 풀고 서로의 마음을 솔직히 전하면 갈등은 풀린다. 어제는 싸워서 꼴도 보기 싫었지만, 오늘은 포옹해 주고 뽀뽀도 해주고 등도 쓰다듬어 주며 우리가 왜 그 사소한 말에 싸웠을까 의아해할 때가 많다.
<할아버지의 첫사랑>
아빠가 신혼초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 강원도 동해 묵호에서 배를 타셨다. 아빠는 성격이 급하고 불같이 화를 냈기 때문에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했다. 허니문베이비를 가진 엄마는 임신한 채로 그 맘고생을 그대로 태아에게 전해주었다. 그래서 나도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고 한다.
결국 다 정리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터를 잡고 있는 강원도 삼척의 한 산촌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 바로 옆에 새로 집을 짖고 시집살이 시작했다. 녹록지 않은 시집살이였지만, 빠른 눈치와 영민함으로 엄마는 잘 버티어 내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유치원에 가기전인 5~6살쯤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날이 어두운데 옆 집 할아버지 댁에서 큰 소리가
났다. 할머니는 죽여버리겠다고 악을 썼다. 삼촌, 엄마, 아빠 모두 가서 말리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아빠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처음 결혼한 여자의 이름은 '매화'였다.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였는데, 금방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을 봐서 만난 여자가 연상의 여인 우리 친할머니이다. 할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우리 매화'가 보고 싶다고 넋두리를 하며 매화를 불렀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는 총 8남매가 있었다. 첫째 아이는 애기 때 병으로 죽고, 둘째가 우리 아빠다. 막내삼촌 바로 위에 예쁜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다쳐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시름시름 앓다가 어린 나이에 죽었다고 한다. 아빠 말로는 정말 예쁜 동생이었다고 한다.
8 남매를 낳고도 서로 정을 붙이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까지도 자주 싸우셨다.
분가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따로 살게 되면서 두 분이 싸우는 걸 직접 본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같은 동네라 두 분이 칼부림을 하고 싸우더라고 소문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첫사랑 '매화'를 잊지 못하고 정작 8남매나 낳아준 여자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연하의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 되어 원한 맺힌 삶을 살았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자식들에게도 사랑을 주고 정을 나눈 것 없이 먹이고 입히는 것만 했다.
할아버지는 땅도 있고 재산이 있어도 자식들에게 공부시키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통해 낳은 아이들에게 사랑과 정을 주지 않고 소나 말처럼 농사일이나 시키고 머슴처럼 부리기나 했다.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나고 재산이 모이면 강릉에 있는 요정을 빌려 몇 박 며칠을 놀고 탕진하고 왔다고 한다.
<부부싸움>
어릴 때부터 부부가 싸우는 모습은 나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밥상을 뒤엎으며 싸우고 할머니는 잔소리, 할아버지는 성질을 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더 무섭게 싸웠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술주정을 하면 할머니는 풀 베는 낫을 들고 와 살벌하게 겁을 주었다. 그런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 나면 어린 마음에 다신 친가나 외가에 가기 싫었다.
손주들을 예뻐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습은 아예 사라지고 귀신 들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모두 선을 봐서 애정도 없이 결혼해서 자식은 6남매씩 낳고 살면서 조금도 사랑하는 마음은 없었나 보다.
엄마와 아빠도 선을 봐서 결혼했다. 엄마는 소도시 사람이었고, 아빠는 강원도 깡촌 사람이었다. 엄마의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땅을 가진 촌놈에게 시집을 갔다. 아빠는 엄마를 많이 사랑했지만, 엄마는 아빠를 불쌍히 여겼지 사랑하진 않는 것 같다.
아이를 셋 낳아서 그냥 살아가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성적이고 부지런했고 책 읽기를 좋아했고, 아빠는 감정적이고 노는 걸 좋아하고 트로트나 창을 좋아했다. 아빠는 아이가 있어서 책임감에 열심히 일을 했지만, 엄마가 시켜야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의견이 맞지 않았고 자주 싸우셨다. 때론 말다툼이 격해져서 아빠가 폭력적으로 돌변했고 엄마도 지지 않고 따박따빡 대꾸하다가 맞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아빠는 집에 있는 기물을 부수기까지 했다. 달콤은 없고 살벌하기만 한 조부모와 부모의 결혼생활을 보면서 결혼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신의 꿈>
시골학교라 학생수는 적고 지원이 되는 건 많았다. 독서 예찬론자에 가까웠던 선생님 부부가 우리 학교에 오시면서 학교 도서관에 시리즈로 된 세계명작동화, 전래동화, 역사동화, 소설전집등이 새로 들어왔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외로운 마음을 책을 읽으며 달래었다.
책에는 예의 바르고 다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좋은 남자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술에 취하고 속상하면 아내에게 소리 지르고 짜증 내고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쯤부터 여중, 여고에 진학하면서 결혼하지 않고 독신자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되자 나도 슬슬 사춘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소도시에 있는 외갓집으로 전학을 가서 라도 자주 싸우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떠나 내 삶을 꾸려가고 싶었다.
공부를 해야 독신으로 누구의 도움도 바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외갓집에 가서 고등학교 3년을 다녔는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엄청나게 많이 싸우셨다. 지옥을 탈출했는데, 또 지옥인 느낌이었다.
<비극적인 가정사가 넘보지 못할 영역>
대학교 2학년까지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여중, 여고를 나오고 대학도 인문대학에 가서, 남학생을 접할 기회가 없긴 했지만, 좋아한다고 다가오는 사람은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하면 아이스크림을 너무 싫어한다고 철벽을 치고 누군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피해 다녔다. 나는 결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사춘기가 심하게 왔고,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학과 사무실 앞 게시판에 중국교환학생 선발 공고가 붙었길래 막무가내로 신청해서 대학교 3학년 때 중국으로 떠나버렸다. 공부하러 왔으니 중국어 실력이나 들어서 가자라고 마음먹고 철벽을 쳤다.
그런데, 그 철벽을 뚫고 내 마음을 뒤흔든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독신주의였던 내가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들을 셋 낳고 부부싸움을 할지라도 하루를 넘기지 않고 폭력은 철저하게 배제하며 가정을 지켜 나가고 있다.
저주의 대물림은 내 대에서 다 끊어버릴 것이다. 비극적인 가정사의 그림자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녹록지 않은 결혼생활에 빛을 비추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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