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형성 과정>
<내 단짝 서영이>
"그럼 선생님도 촌년이시네요" 초등학교 1학년때 내가 담임 선생님께 했던 말이다. O형이라 직설적이었다. MZ의 표현에 따르자면 나는 'T'이다. 수업시간 선생님이 도시에 살면 도시녀라고 한 말에 내가 화답했던 말이다. 그렇게 거침없이 자기주장을 펼치고 명랑하고 밝은 내게 시련이 찾아왔다. 우선 2학년 때 가장 친했던 단짝 친구가 도시로 전학을 갔다. '심서영' 아직도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한다.
키는 또래 친구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고 성격도 쾌활했다. '000만 내 반찬 먹을 수 있어' '000만 내 크레파스 써도 돼'라고 하며 특별히 나를 아껴주는 친구였다. 서영이네 집은 동네 구명 가게를 했는데 가정집이 딸려있었다. 종종 나를 데려가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제 것처럼 챙겨 와 나와 나눠먹었다. 구멍가게여도 동네에 하나밖에 없어서 독과점이었고 장사는 꽤 잘 되었던 듯하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일까? 서영이는 향기롭고 따뜻한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엄마의 부재>
초등3학년 때는 엄마가 큰 병에 걸려, 심장 수술을 하느라 가을부터 겨울까지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 있었다. 엄마가 심장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후 사회생활을 많이 하셨다. 전업주부이자 농사만 짓던 엄마는 새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하시며 외출이 잦아졌다. 하교하고 집에 오면 항상 반겨주던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주말에는 내가 세탁기를 돌리고 집안일을 하고 밥을 차려서 동생과 아빠에게 먹을 때도 있었다. 엄마는 여러 가지 모임, 장거리 출장등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외로웠다. 아빠도 외로웠던 걸까? 아빠는 술을 자주 마셨고 엄마가 없을 때 더 짜증을 내고 폭력적으로 행동했다. 엄마가 검정고시도 보고 사회적으로 위치가 올라가자 아빠는 상대적으로 무식하고 교양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 그 갈등으로 부모님은 자주 다투었고 아빠는 겨울 농한기만 되면 술을 마시고 온 가족에게 화풀이를 했다.
<따돌림>
초등4학년 땐, 작은 시골학교에 학생수도 적은데,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따돌렸다. 그렇게 점점 위축되고 자신감도 사라지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까지도 주기적인 따돌림은 계속되었다. 따돌림의 주동자는 6남매의 막내딸 '천복자'였다. 복자는 자기 집도 없는 소작농부인 부모 밑에서 자랐다. 이런 사실은 엄마가 나중에 얘기해 주었다. 복자가 나를 질투해서 그런 것 같다는 엄마의 생각도 말해 주시면서.
복자의 사정은 모르겠고 나는 정말 힘들었다. 기어코 엄마에게 읍내에 학생수가 많은 큰 학교로 전학 보내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게다가 엄마는 한 창 문학회 활동과 고랭지 채소 농사에 신경을 쓰느라 바쁘셨다. 결국 작은 시골학교에서 졸업식을 맞이하고 중학교에 가서는 복자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
<소극적인 아이>
그때부터 인 것 같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6학년 때부터 나는 아주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가 되었다. 자존감이 낮고 나서기를 싫어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꺼렸다. 친구들이 문방구에 구경 가고, 분식집에 놀러 갈 때 난 바로 집으로 갔다. 도서관에 가서 혼자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속 깊은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부모님께 나의 감정과 필요도 잘 표현하지 못했다.
가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서 애꿎은 동생들에게 짜증 내고 소리를 질렀다. 중1 때 기말고사를 칠 때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을 못 해서 오줌을 쌌다. 선생님이 대걸레로 내 오줌을 닦아주고 난 부끄러워서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중3 때는 고입스트레스로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다.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동생을 밀어 두고 아닌 척했지만 곧 들켰다.
<상처 치유>
누구나 과거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기 싫어한다. 나는 잘 살아왔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최면을 건다. 그리고 정신승리를 한 것처럼 자신을 포장한다. 멋진 친구들, 보석, 명품 옷이나 가방, 비싼 차, 브랜드 아파트 등으로 치장을 하며 나의 가치를 드러낸다. 나도 한 때 사랑받고 부족함 없이 자람 사람인 척을 했다. 부모님은 사이가 좋으시고 경제적으로 넉넉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본모습을 숨겼다.
하지만 상처가 깊어 내면이 건강하지 못하면 일상을 살아가면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한다. 어떤 일에 집착을 한다. 때론 사람들에게 매달리거나 심하게 매정하다. 순간적인 감정들을 제어하지 못한다. 평정심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너무 관심받고 싶어 하거나 반대로 모든 관심에서 벗어나 혼자가 되고 싶어 한다. 가끔 내가 미워헀던 누군가가 꿈에 나타나 여전히 나를 억압하고 쫓아오기도 한다. 정신병원에 갈 필요는 없다.
다만, 내 마음 챙기기는 꼭 해야 할 일이다. 육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봉인된 기억들을 끄집어내면 고통스럽고 밉고 슬프고 두려운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그럴 때 불편한 누군가를 한 명씩 용서해 본다. "나는 000을 용서해, 이제 너를 떠나보낼게"라고 말해 보라. 어떤 사건이 떠오를 때 어리고 힘없는 나를 용납해 본다."나는 너무 어렸어. 그땐 어쩔 수가 없었어. 이젠 그렇게 밖에 대처를 못한 나를 용서해"라고 말해 보라.
'책& TV리뷰 or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아버지의 첫사랑 (1) | 2024.05.29 |
---|---|
사랑에 따라오는 감정들 (0) | 2024.04.04 |
신앙고백1 (0) | 2024.02.03 |
에세이 습작-사무치는 그림움 (1) | 2024.01.22 |
네이버 시리즈 이용 후기 (2) | 2024.01.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