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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생활

명절 시집살이

by 논술쌤 작가 2024. 1. 2.

 

 

 

코로나가 22년에 거의 끝나고 2023년이 되어서야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귀향, 여행, 축제, 소풍이 모든 것이 미루어졌던 시절이 끝나고 일상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3년 추석은 여행과 귀성의 봇물이 터진 기간이었다. 경기도 파주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13시간이 걸렸다. 예년 귀성땐 심하게 밀려도 8시간을 넘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국가에 재난이 일어난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길이 막혔다. 휴게실에 들어갈 때도 차가 너무 많아 주차공간이 없었고, 뒤에 오는 차 때문에 밀려밀려 그냥 통과해서  다음 휴게소로 가는 동안 터질듯한 오줌보를 간신히 붙잡곤 했다.

 

 시댁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명절 음식만 하면 됐지만 그래도 오전중에 도착해서 일할 각오를 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났다. 그런데 애들이 너무 힘겨워했고, 남편도 몇 시간 못 자서 조금만 더 자다가 출발하자고 했다. 그렇게 5시에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6시~7시 사이에 벌써 고속도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잠시 이러다 정체가 풀리겠거니 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음료수와 소시지, 과자등으로 아침을 때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는 더 많아지고 있었고 오전은커녕 점심때쯤 도착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네이게이션은 부산까지 거리와 시간을 알려주는데, 마치 어떤 환상 속에 시간처럼 8시간이었다가 9시간으로 부산 도착 예상 시간이 더 늘어가고 있었다.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예상 도착 시간은 늘어만 가는 기이한 광경 앞에 우리 다섯 식구는 극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후 5시가 넘어가자 시댁에서 연신 전화가 왔다. 도대체 몇 시에 출발했길래 이렇게 늦게 오냐는 것이다. 막힌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이미 감정이 상했다.

 

 어머님의 의심과 달리, 우린 새벽 잠을 설쳐가며 터질듯한 오줌보를 볼모 삼아 최선을 다해 부산을 향해 액셀을 밟고 있었다. 대구를 지나자 속도가 조금 붙었고, 6시가 좀 넘어서 시댁에 도착했다. 저녁을 차리는데, 튀김과 전이 안 보였다. 그리고 주방 한편에 손질하다만 식재료들이 보였다. 이미 심한 멀미로 휴게실에서 1차로 토하고 와서 그런지 빈 속에 올라올 것은 없고 육두문자가 올라올 뻔했다. 보통 명절엔 추석 전날 오전~점심에 걸쳐 전과 튀김을 만들어 점심시간에 시식을 하는데, 이건 뭐 일부러 안 한 거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멀미를 심하게 해서 누워있고 싶었지만 쌓여있는 식재료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정말 너무 입맛이 없어서 조금 먹었는데, 밥을 왜 조금 먹냐고 어머님이 남편에게 물어본 모양이다. 멀미를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도 어머니는 아무말이 없이 전과 튀김을 만들 준비를 했다. 

 

 남편이 토요일에도 일하는 직업이고 명절 말고는 거의 쉬지 않는 직업이라, 명절때만 시댁 식구들을 볼 수 있다. 그건 애틋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서로 대면대면 할 수도 있는 요인이다.  그럼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친정엄마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엄마한테 일러주고 어리광도 부리고 시댁 험담을 실컷 늘어놓으며 수다로 라도 현재와 같은 기이한 현상을 풀어냈을 텐데 그런 호사스러운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난 전과 튀김을 빠른 손놀림으로 해치웠고, 어머님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오징어를 다 꺼내와 연장전에 돌입했다. 오징어 튀김은 손도 안 댔다. 꼴 보기 싫었다. 

 

멀미로 미식거리고 장거리 여독으로 어지러운데 튀김냄새로 속은 더 메스꺼웠다. 나도 아들 셋을 키운다. 혹여나 내가 시어머니가 되면 어떤 마음일까 역지사지 정신을 발휘해 봐도 작금과 같은 상황은 전혀 헤아려지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별 생각이 없으시구나 가족이 모이면 전과 튀김을 꼭 먹는데 며느리가 좀 불편한 걸 넘어서는 것이구나 난 개인주의에서 빨리 벗어나 전체주의에 가담하여 속을 어르고 달랬다. 

 

 온 가족이 튀김을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도 옴박옴박 다른 음식은 손을 안대도 튀김만은 맛있게 먹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그리고 어머님은 며늘아기 하나만 챙길 수 없는 입장임을 다시 생각해 본다. 누구도 미워하고 싶지 않다. 힘든 기억은 오래 묻어두고 싶지 않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괜한 남편에게 구박을 주고 엄청 후회했다. 남편과 어머님은 다른 인격체인데 왜 어머님의 옹졸함을 남편 탓으로 돌리냔 말이다. 가는데 13시간 오는데 10시간 걸려 운전하느라 남편이야 말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어른이 되어가자. 좀 더 살펴보고 좀 더 배려하고 헤아리다 보면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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