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다 온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50살에 가까운 나이에 풍채가 있으시고 인상이 굉장히 좋은 남자 선생님 이셨다. 그 선생님은 내가 서울에서 살다 온 아이 같다고 하셨다. 시골 아이 답지 않게 예쁘고 똑똑하게 생겼다고 대놓고 공개적으로 얘기하셨다. 한 번도 서울에 살아 본 적이 없으니 서울에 사는 애들은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서울에 가보고 싶고 서울에 사는 친구도 만나보고 싶었다.
<겁쟁이>
난 어릴 적부터 겁이 많은 아이였다. 서울에 살다 온 아이처럼 생겼지만, 실은 강원도 산골 토박이였다. 벌레, 동물, 운동은 물론이고 모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감이 예민해서 뭐든지 큰 자극으로 느껴진 것 같다. 고3 때 대학진학을 앞두고 진로 탐색과 관련된 여러 가지 검사를 하다가 내 공간지각능력이 항상 상위 1% 안에 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금 분석을 해 보자면 오감이 예민하고 공간에 대해서도 감각이 뛰어나서 더 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유별하게 구니까 부모님은 윽박지르고 답답해 하면서 자주 비난을 했던 것 같다.
<실기점수>
겁이 많아서 운동도 잘 못했다. 모든 감각이 크게 다가와서 움직임이 크면 불편했다. 그래서 체육시간에 소극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체육시간이 항상 긴장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체육시간 실기시험을 보고 그 점수가 내신에 반영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크게 절망했다. 기초체력이 없어서 체육을 못했고 게다가 여러 감각이 예민해서 뜀뛰기, 평행봉, 앞 구르기, 뒷구르기, 달리기 모든 종목이 두려웠다.
<체육 찌질이>
체육시간, 체력장, 신체검사 이런 시간이 공부하는 날보다 더 싫었다. 부담스럽고 챙피하고 힘겨운 시간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내신을 잘 받아야 좋은 고등학교에 가고 좋은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고 조금씩 내신 성적에 욕심을 내게 되었다. 그리고 중2 중간고사 시간, 체육 실기시험 시간이 되었다.
실기시험 종목은 뜀뛰기였다. 뜀뛰기는 달려가다가 도움닫기를 하고 다리를 벌려 높이 뛰어올라 뜀틀을 뛰어넘는 운동이다. 겁 많고 예민한 나에게 뜀뛰기는 가히 지옥의문 이었다. 반 친구들 대부분이 성공하는 데, 나랑 겁 많은 친구 딱 2명만 항상 낙오자였기 때문이다. 평소 체육시간에 한 번도 성공해 보지 못한 종목을 실기시험으로 봐야 한다니, 정말 괴롭고 긴장이 되었다.
<알 수 없는 힘>
4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이 쭉 둘러있고, 매트와 뜀틀이 놓여 있는 체육관에서 실기시험이 진행되었다. 어떤 이는 가볍게, 어떤 이는 힘겹게 그러나 모두 성공을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두 번 기회를 주신다고 했다. 점수, 내신 점수만 생각했다.
한 번 도 성공해 본 적이 없지만, 좋은 고등학교에 갈 때 필요하다는 내신 점수를 얻기 위해 속도를 내며 뛰었다. 그리고 두 발로, 뜀틀 바로 앞 발판을 뛰어오르고 두 손을 모아 뜀틀을 세게 누르며 몸을 최대한 앞으로 밀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붕 뛰어올라 두 다리를 모았다. 눈을 떠보니 처음으로 뜀틀에 성공한 내 두 다리가 안정되게 모아져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친구들 사이에 널리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내신 점수를 준다고 하면 뭐든지 열심히 해서 결국 해내고 마는 아이로.
<절박함>
엄마와 아빠는 선을 봐서 결혼을 했다. 선은 조건을 보는 것인데 서로 조금씩 속이고 결혼을 했나보다. 성격, 취향, 입맛 모든 것이 다 안 맞았다. 그래서 거의 매일 싸우고 또 싸웠다. 그런 환경이 나를 더 두렵게 하고 소극적인 아이로 많들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엄마는 크게 아파서 심장 수술을 받았으니까 난 더욱 공포에 취약한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 2학년이 지나가면서 고등학교, 대학교 뭐 그런 것들이 내 인생을 바꿀 찬스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지만, 싸우고 다투는 그 환경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중학생 때만 해도 평준화는 없었고, 오직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를 가던 시절이라, 고입에 온 신경을 썼다. 부모님은 공부하라고 잔소리한 적이 없다.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해 놓으라고는 하셨다.
집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 나의 절박함이었다. 그래서 학원에 못 다녀도 혼자 공부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고 못하는 체육도 온 힘과 정신을 집중해서 미션을 수행했다. 내신점수를 잘 받으려고 내 한계에 도전하고 인내했다. 나에게 절박함은 초능력을 만들어 냈던 것 같다.
세 아들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꽤 자주 절박함을 느낀다. 내 한계를 뛰어 넘는 부분을 만나게 될 때, 중학교때 내신 점수를 얻기 위해 초인적인 용기와 인내와 힘을 발휘했던 추억을 소환한다.
'그래, 난 내신점수 준다고 하면 초능력자가 되어서 친구들이 혀를 내둘렀잖아' 애를 이렇게 많이 낳지 안았다면 어땠을까? 남편과 인연이 닸지 않아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좀 더 편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비효율적인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삶을 탓하지 않고 도전하고 헤쳐나간다. 내가 좀 버겁고 힘겹운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면, 그런 날이 쌓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이었다 고백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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